음양사-야광배(夜光杯) 권. 소설, 영화, 음악 등등

2009년 12월에 나온 유메마쿠라 바쿠의 음양사 시리즈 중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문예춘추 올요미모노 연재 중인 단편 모음집 <밤빛잔의 권>입니다. 아직까진 정판이 나오지 않았네요.

오카노 레이코의 만화 <음양사>쪽이 아마 원작가 유메마쿠라 바쿠(이 냥반 닉네임 센스 정말 대단하죠. 꿈과 배게와 맥(꿈을 잡아먹는 상상의 동물)이라니;;;)의 소설보다 훨씬 더 한국에선 유명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5번째 쓰는 것 같은데 두 사람의 작품 사이에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있습니다.


책 스포일러 다 나와있으니 신경이 쓰이신다면 백스페이스.



뭐 바쿠 냥반 스스로가 [난 만화를 못그려 소설가 됐다능! 누가 내 소설 좀 만화로 그려달라능!!!!]인 사람이라 소설과 만화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 제 생각에엔 <신들의 영역>인 것 같고 이 <음양사>의 만화판은 오카노 레이코의 메리수 2차 동인지를 보는 것 같아 식겁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오카노 레이코의 음양사 만화는 셜록 홈즈를 만화로 그렸는데 갑자기 오리지널 캐릭터인 셜록 홈즈의 장래 마누라인 여캐가 나오고 왓슨은 찐따가 되며 셜록 홈즈랑 오리지널 여자 캐릭터랑 우리 둘이만 서로 이 우주에서 이해하는 사이양~~~이러고 자빠진(..............) 터라. (만화 팬에겐 죄송)


바쿠 냥반이 해설마다 말하듯 <나의 아베노 세이메이가 다른 세이메이와 다른 것은 미나모토노 히로마사 때문이다>라고 히로마사 빠심을 외치듯이 미나모토노 히로마사는 가면 갈수록 무서워지고 있습니다.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문자 그대로-.-;;;;) 만화판의 세이메이와는 달리 오히려 가끔 히로마사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원판 세이메이입니다. 가끔 가다 보면 히로찡 너 무서워.(..........)

이번 편에서도 둘은 퀴어퀴어하게 놀고 있습니다. 아니 뭐 진짜 우정 이야기이긴 하지만 바쿠 쌤 본인이 자기 홈페이지에서 [나 패러디 동인지 잘 본다능] [세이히로 좋다능 내 의도라능] 이걸 실시간으로 본 인간인지라.(.............)

각설하고.
9편의 단편으로 이어진 이번 단편집에서도 진짜 심금을 울리는 두 사람의 대사와 아름다운 바쿠 쌤의 문장이 돋보이네요.


1. <월금 아씨>
네. 악기인 월금 이야기입니다.
몇 권부터인가 모르겠는데 언제부터인가 히로마사는 세이메이 때문에 삐치면 입술을 삐죽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이구 세이메이 도노 저도 히로마사 입술 한 번 좀 잡아당겨보면 안될까요 굽신굽신.
그리고 드디어 히로마사는 의도치 않았는데도 식신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하기야 뭐 악기를 연주하면 세상 만물 심지어는 세이메이조차 히로마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식신이죠 뭐. 신기할 것도 없네요. (........)
악기덕후 히로마사가 월금을 연주하고 어루만지며 아이구 이뻐 죽겠어 난 너 없음 못살겠어 부비부비 이러는데 그야 천하의 어떤 악기든 뭔가 생기기야 생기겠죠. 그런데 그걸 연애하냐며 가지고 놀리는 세이메이도 귀여워 죽겠네.
여전히 주상을 그 남자라 부르며 어차피 권력의 꼭두각시지 않냐는 세이메이의 뉘앙스도 건재. 뭐 헤이안 시대 이후부터 일본의 왕이라는 게 꼭두각시지 머.

[사라여, 사라여, 네가 우는 소리는 너무나 듣기 좋구나. 너는 너무나 사랑스럽구나. 나는 네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구나...]

히로마사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악기가 듣고 오해하잖어. 원래는 임금의 악기이건만. 너란 남자 죄많은 남자.

-----

[자, 그래서 어쩔텐가, 히로마사]
[어쩌냐니]
[사라 도노(경칭)는 자네 식신이 되었다네]
[정말인가]
[정말이지]
[어쩌면 좋은가
[글쎄-----]
세이메이는 히로마사를 놀리듯 미소를 지으며 잔을 손에 들었다.
[오늘밤은 그냥 느긋하게 술이나 마시세]
[마, 마시는 거야 괜찮네만....]
[우선은 사랑을 해줘야겠지]
[사랑해줘?]
[오오, 사라여, 사라여, 그대는 너무나도 좋은 소리로 우는구나......]
세이메이가 히로마사의 목소리를 흉내내다.
[놀리지 말게, 세이메이]
[놀리지 않았네. 사랑해주라는 건 저걸 연주하라는 소리지. 히로마사여, 오늘밤은 나를 위해 저 사라를 연주해주지 않겠는가]
[으, 으음]
[이보게, 히로마사여. 자네는 나 따위보다 훨씬 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네. 그러나 그걸 모르고 있지. 그게 좋은 거라네. 그게 자네인 거라네. 그것이 히로마사라는 좋은 사내라네. 그렇기에, 모르기에, 이 천지도 이 세이메이의 마음도 움직이는 거라네]
[----------]
[자네가 연주하는 음악은 이 나를 술보다 더 취하게 해주지]
[정말인가]
[아아]

---------헤이안의 도읍은 히로마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군요.

2. <용신제>
오랜만에 비파의 명인, 맹인 세미마루 법사 출현. 뭐 별 비중은 없지만.
히로마사의 하후다츠가 없어졌는데 진범은 일본의 슈퍼스타(...) 공해법사가 불러낸 적이 있는 천축의 선녀용왕이었더라는 이야기지만 히로마사의 음악은 제석천을 비롯하며 천축의 신들도 춤추게 하는군요.
교토 니죠조 옆에 있는 신센엔이 이번엔 배경입니다. 흐음. 다음에 가면 가볼까. 별 관심 없는 곳이었는데. 그런데 나는 일본 고유명사를 쓸 때 어쩔 땐 한자로 어쩔 땐 일본어로 줏대가 없구나. 공해도 사실 고유명사니까 쿠카이라고 해야겠지만서도; 내가 번역자가 아니니 후다닥.
그러고보니 하후다츠(쌍엽)이라는 이 피리, 히로마사 아님 소리가 안 나왔었지. 잊고 있던 설정.
아차차 그리고 이번 편에도 피리는 히로마사가 불고 돈은 아니 보수는 세이메이가 챙겼습니다. 선녀용왕의 비늘.(......)

3. <쯔쿠즈쿠(月突) 법사>

히로마사의 명언에 가슴이 짠했습니다. 올해의 벚꽃은 작년의 벚꽃 같지만 다르듯 또 같고 같듯 또 다르고. 창포도 그렇고. 단풍도 그렇고. 자연은 그런데 나만 변하는 것 같고. 어딘가 짠하고 슬프고. 그러나 그 짠함이 싫지만은 않고. 이 세상에 내가 나왔듯 이 세상에서 나는 떠나야하고. 내가 떠난 뒤에도 벚꽃은 피고 지고 단풍은 들고 지고. 그러나 그것이 인간사이고.

그건 그렇고 세이메이가 권락겨인 후지와라노 카네이에를 손바닥 안에 놓고 굴리는 아니 암중모략이 판을 치는 조정에서 어떻게 자기 편으로 만드는지 참 재밌는 묘사가 나오네요. 허허허. 세이메이식 처세술. 허허허.

인간만 천국가고 영혼간다는 기독교와 달리 불교에선 그 어떤 것에도 불성이 깃들어있다는 법화경 내용이 배경입니다. 끄덕끄덕.
사실 본편보다는 서두의 히로마사의 인생관과 카네이에의 [세이메이 넌 대체 어떤 주술로 날 맘대로 부려먹고 있냐]가 더 임펙트가 커서.

4. <무주(無呪)>

그러니까 히로마사 제발 아무 데서나 연주 좀 하지 말라구요. 사실 헤이안 도읍 최고의 사고뭉치는 이 사람 아닐까.(.......)
혼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불교나 도교식 철학은 사실 천체물리학하고도 통하죠. 아무튼 혼돈은 모든 것도 아니고 또 모든 것이기에.
그나저나 바쿠 쌤이 묘사하는 히로마사의 연주 씬은 참으로 에로틱합니다요. 아름답기도 아름답지만.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격언이 이번에는 사람은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본다로 이어지는군요. 좋게든 나쁘게든.

천하의 세이메이를 [뭐시라!?]하고 느낌표 물음표 동시에 붙게 만드는 건 히로마사밖에 없구나.(.......)

5. <미미즈쿠(벌레 먹는) 법사>

虹자에는 벌레 충자가 들어있습니다. 재밌는 아이디어였어요. 무지개와 물과 일본 고대 신화가 어우러진 재밌는 이야기.
그러나 영상으로는 보고 싶지 않다능. 일곱 빛깔 무지개가 아니라 일곱 빛깔 벌레는.

6. <식객"놈들">

번역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식객 뒤에 (下郞) 요 넘을.(...........)
저승사자 이야기입니다. 저승사자 속여넘기기 세이메이의 기지 발휘도 발휘지만.
죽음에 대한 히로마사의 담담한 서술과 당황하는 세이메이가 재밌었습니다.

[저들은 지옥의 옥졸들이라네. 수명이 다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일이지]
[또 오겠다고 하던데]
[그야 언젠간 또 만나게 되니까.....]
[언젠가?]
[언젠간 우리들도 죽을 테니까 말이네. 그 때 저들이 데리러 올 터. 그것이 산 자의 운명이지]
[우리도 죽게 되겠군]
[아아, 죽겠지]
[자네도 죽게 되는가, 세이메이--]
[죽어]
[나도?]
[죽지]
[그건 언제일까]
[알고 싶나, 히로마사]
[아니, 몰라도 되네]
딱 잘라 말한다.
[그런가]
[음, 그렇네]
[음]
[이보게, 세이메이]
[뭔가, 히로마사]
[언제 내가 어떻게 죽게 된다 하더라도....]
[왜 그러나]
[이렇게 자네와 이 세상에서 만나고, 이렇게 함께 술을 마시던 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말이네. 그것은 즉......]
[즉?]
[언젠가 죽는다해도 그건 그것대로 운명이겠지]
[음]
[그럼 되네]
[음]
[이 세상에 자네가 있어 다행이라고 나는 지금 가슴에 사무치게 생각하고 있다네, 세이메이]
[바보....]
[바보?]
[그런 말은 갑자기 하는 말이 아닐세, 히로마사]
[왜]
[내 마음에도 준비라는 게 필요하니까]
[흐음]
히로마사는 웃으며 세이메이를 본다.
[왜 그러나, 히로마사]
[자네도 의외로 귀여운 데가 있군]
[날 놀리지말게, 히로마사]
[안 놀렸네]
[그보다 피리나 불어주게. 자네 피리를 듣고 싶어졌네]
[음]

도망쳤다!! 세이메이는 까딱하면 피리를 듣고 싶다며 히로마사에게서 회피한다!!!(..........)

덧글

  • 天照帝 2012/02/28 14:09 #

    ...하후다츠를 들고 나른 게 선녀'용왕' 이라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미야코의 백귀야행이 분기탱천해서 총출동할 사태였군요 그거;
    (아니 잠깐? 그러기로 치면 백사히메도 만만치 않은 상대 아닌가?)
  • 사노 2012/02/28 14:41 #

    들고 나르기는 날랐는데 일 끝나면(천축국 잔치) 돌려준다는 증표로 자기 황금 비늘을 놓고 갔으니 미야코의 백귀야행은 알아먹었을 수도 있으나 히로마사가 그걸 어찌 압니까요 선녀용왕님아........라고 선녀용왕님 꼬리 잡고 짤짤짤 흔들고 싶은 심정.(.....) 백사히메도 만만치 않기야 하지만 천축의 제석천과 맞먹는 선녀용왕과는 급이 좀 다르지 않을까요?
  • 天照帝 2012/02/28 19:10 #

    아... 하긴 제석천하고 맞먹는 급이시라면. -ㅂ-;
    (백사히메도 용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긴 하지만 뭐 레베루 차이가 있는 거...;)
  • 키르난 2012/02/29 20:46 #

    엄, 이거 원서로 보려고 내용은 건너뛰고. 일단 번역판이 언제쯤 나올지 기다리다가 못 참으면.. 원서로 사야지요. 환율이 낮았다면 망설임 없이 질렀을텐데, 환율이 높은 걸 찬양해야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ㅠ_ㅠ
  • 조훈 2012/06/22 05:41 #

    우연히 검색으로 왔습니다. 바로 그저께 정판이 나왔어요. 원서로 보긴 했는데 재삼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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