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의 홈즈와 왓슨 - 음양사, 타키야샤히메 편. 소설, 영화, 음악 등등


일본의 교토가 헤이안이라 불렸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북쪽의 발해, 남쪽의 신라가 있던 먼 옛날.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가 같이 살던 헤이안의 어둠 속에, 한 음양사와 한 왕족이 만납니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오카노 레이코의 동명 소설의 만화화로 잘 알려진 [음양사] 시리즈의 두 번째 장편인 [타키야샤히메]를 이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음양사라는 건 뭐 우리나라 조정에 있던 역관들쯤 될까요. 하늘과 땅의 조짐을 읽는 자들.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를 다루는 일본 매체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유독 이 유메마쿠라 바쿠의 아베노 세이메이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연재가 계속되는 이유는.

미나모토노 히로마사라는 인물 때문이지요.
역시 역사상 실존인물이며 지금도 연주되는 아악 [장경자]를 작곡했다는 희대의 음악가입니다. 할아버지가 무려 다이고덴노--다이고천황--인 신분 높은 왕족이죠. 그가 연주하면 사람도 울고 귀신도 울렸다는 피리의 명인.

유메마쿠라 바쿠는 이 두 사람을 헤이안의 셜록 홈즈와 왓슨으로 설정합니다.

이번 장편 타키야샤히메 이야기는 또다시 실제로 역사상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뒤섞여사는 헤이안 도읍. 20년 전 어떤 사건에 연류된 귀족들에게 차례차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임신한 여성들이 납치되어 배가 갈리는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번 사건에는 역시 유명한 음양사인 아시야 도만과, 세이메이의 사형인 카모노 야스노리도 대활약을 하는데, 사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오카노 레이코의 만화가 원작과 너무 달라진 점이 바로 이 캐릭터들이죠.

만화 음양사는 [나는 아베노 세이메이 빠순이라능!]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가 되는데, 원작자 유메마쿠라 바쿠는 [나의 세이메이가 다른 세이메이와 다른 건 미나모토노 히로마사가 있어서라능, 그리고 다른 음양사들---아시야 도만, 카모노 야스노리---도 찐따가 아니라 세이메이만큼 잘났다능!]이라서요.

뭐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만화 음양사는 소설 셜록 홈즈를 너무나 사랑하는 만화가가 저렇게 왓슨한테 헬렐레하는 호모호모 옴즈 싫다능 하면서 오리지널 여성 캐릭터를 홈즈 마누라로 설정하고 왓슨은 찐따 찬밥에 마이크로프트 홈즈도 찐따가 되는 그런 겁니다. (와 쌈박하다 내가 생각해도)


고위 음양사 3인방---세이메이, 도만, 야스노리---의 엄청난 능력도 사실 그 음양술이나 도술보다는 뛰어난 추리력이나 판단력에서 기인합니다. 또한 음양술 역시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막 쓸 수 있는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환경에 따라 제약을 받는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이번 사건 역시 해결 방법은 주로 추리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헤이안의 셜록 홈즈와 왓슨이라는 이명을 얻은 게죠. 뭐, 원작자 바쿠 샘이 처음부터 그렇게 쓰기도 했지만.


만화에서는 워낙 세이메이 띄어주기에 급급해서 거의 몸빵 캐릭터로 전락한 히로마사지만, 사실 인간 아닌 존재에 더 가까운 건 세이메이가 아니라 히로마사라는 게 소설의 재미기도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는 것도 히로마사. 더러운 인간의 감정도, 감당하기 힘든 인간사도 휘몰아치는 도읍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는 바로 너라는 말이 대놓고 나오는 무서운 호모 소설이기도 하고요. (진지합니다)


철없는 왕족 도련님이 아니라, 사적인 감정 없이 오로지 정치적인 위치 때문에 몇 번이나 암살당할 뻔한 불행한 운명의 주인이 바로 히로마사입니다. 그런 암살범이나 정적조차 그의 음악과 인품에 눈물을 흘렸다는 사료가 몇 개나 있을 정도의 인물이죠.

소설 중반쯤, 동인녀의 내뇌망상으로 히로마사라면 타이라노 마사카도나 흥세왕을 위해서도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으며, 헤이안 도읍을 멸망시키려는 나름 정당한(?) 이유를 가진 자들조차 히로마사에게 감동한다는 BL 팬픽 하나 머리에 펼치고 있던 저를.

진짜로 써서 KO 시켜버린 바쿠 샘.
..............아놔 동인녀가 하려는 걸 원작자가 해버리면 대책이 없다능.
이 음양사나 지팡구나 거 참.....................고맙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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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어라..........]
히로마사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가엾게도, 가엾게도..........]
중얼거리는 히로마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왜 우는가]
[모르겠사옵니다]
히로마사는 말했다.
[시게타마루 때문이라면 슬퍼하지 말게. 바로 이 나 스미토모를 위해 죽었다네]
[아닙니다. 저는 시게타마루 님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냐.......]
중얼거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나인가?]
스미토모는 말했다.
[설마, 히로마사 님은, 당신은 바로 이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리는 없을 터]
[----------]
[도읍이나 임금의 자리란 언제나 남의 피를 손에 묻히고 나서야 얻는 법. 그 피는 바로 자신의 부모형제, 친족의 피가 제일 많이 흐르는 법이지. 그것은 왕족인 당신도 잘 알 터. 그런데, 왜 우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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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캐릭터 아시야 도만은 뛰어난 음양사이나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으며 내심 헤이안 도읍이 없어져버리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하는 아나키스트입니다. 도만은 가끔 세이메이에게 묻지요. 너 역시 이 세상이 필요치 않은 인간이 아니더냐.

그러나 세이메이는 말합니다. [내게는 히로마사 있다]고. 이렇게 절절한 BL......별로 없지요.


[자네는 어떠한가, 히로마사]
[나 말인가?]
[으음]
[내가 어떻다는 겐가]
[자네는, 이 도읍이 좋은가]
세이메이가 묻자 히로마사는 입을 다문다.
히로마사가 입을 다문채 수레는 덜컹, 덜컹, 땅바닥에 바퀴자국을 남긴다.
[어떤가, 히로마사]
세이메이가 묻는다.
[나는 모르겠네, 세이메이]
[모르겠나]
[나는 이 도읍밖에 모른다네]
히로마사가 조용히 말했다.
[다른 땅에서 다른 방식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실은 모른다네. 세이메이----]
[-------]
[그러니 어떠냐고 묻는다 해도, 나는 대답을 잘 할 수가 없다네, 세이메이]
히로마사는 말했다.
[미안하네, 히로마사]
[뭐가 말인가?]
[쓸데 없는 것을 물었군.......]
[그렇지 않네]
히로마사는 서둘러 말했다.
[도읍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지금의 내게는 고마운 것이 하나 있네]
[무언가]
[자네라네]
[나?]
[도읍에는 자네가 있지 않나, 세이메이---]
우직할 정도로 소박한 단어로 히로마사는 말했다.
일순, 세이메이는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히로마사여]
세이메이는 말했다.
[뭔가]
[그런 건 그렇게 직설적으로 할 말이 아니네]
[왜인가]
[내가 대답하기 곤란하지 않은가]
[곤란한가]
[곤란하네]
[그것 참 좋군]
히로마사의 목소리는 기쁜 듯 들렸다.
[자네는 바보일세]
[뭐가 바보인가]
[실은 나 역시, 도읍이 그리 나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네]
[호오]
[자네가 있기 때문이지, 히로마사]
[내가-----]
[아아. 히로마사가 있기에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으니 말이네]
그렇게 말하는 세이메이를, 히로마사는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왜 그러나]
[괜찮네]
[뭐가 괜찮은가]
[오늘은 화가 안 나네. 자네의 그런 말투도 내 용서해 주겠네, 세이메이]
[오늘의 자네는 묘하게 버겁군 그래, 히로마사---]
[그런가]
[그렇네]
[흐음]


-------------

헤이안 도읍 공식 호모 커플 축하합니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추리소설 형식에 기담이 넘쳐나지만, 결국 주제는 [인간이 인간답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격투 소설이나 모험 소설로도 유명한 유메마쿠라 바쿠지만, 이 음양사 시리즈에서는 아름다운 언어로 담백하게, 마치 시처럼 인간에 대해 써내려갑니다. 인간에 대해 크나큰 희망의 불씨를 히로마사에게서 보면서요.

몇 번의 반전을 거듭한 끝에, 헤이안 도읍은 이번에도 두 콤비의 덕분에 큰 고비를 넘깁니다. 하지만 바쿠 샘은 헤이안 도읍과 그 안의 군상들, 그리고 그 중심에 좋든 싫든 서있는 미카도---왕----이 아마도 다음 타깃이 될수도 있다는 떡밥을 뿌리며 저를 설레게 해주시는군요.
일본의 왕, 즉 덴노가 만세일계일 수 있던 이유는 정치적 힘이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소설에서도 덴노는 그냥 헤이안 귀족들 중 세력가들의 병풍이자 상징일 뿐입니다. 뭐 상징에도 엄청난 힘이 깃들 수 있지만요.


온몸이 갈갈이 찢기는 원한으로 미쳐버려 인간이 인간 아닌 것으로 변해버린다는 것. 타인에게 당한 해로 인해 다른 관계 없는 타인을 아무 거리낌없이 짓밟아버릴 수 있다는 것. 어느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것. 인간은 마음 먹기에 따라 부처로도, 또 인간 아닌 오니로도 변할 수 있다는 것.

다음 단편들도, 다음 장편들도 여전히 기대가 되는 음양사 시리즈입니다.
20여년의 시간 동안 세이메이와 히로마사는 변한 듯 변하지 않으며 여전히 내게 나타나주네요.

=======--

나누는 말은 거의 없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히로마사와 세이메이에게는 서로의 접점이 있는 것 같다.
잔을 입으로 가져가 술을 입에 머금고, 히로마사는 살짝 취한듯 한숨을 쉬었다.
천천히, 빈 잔을 툇마루로 돌려놓는다.
[그윽한 밤일세....]
히로마사는 중얼거렸다.
세이메이의 시선이 히로마사에게로 움직인다.
[벚꽃이 너무나 아름답게 피지 않았나, 세이메이]
[음]
세이메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될 수 있다면 나도 저 벚꽃처럼, 내가 나로 있으면 좋겠군]
[호오]
세이메이가 시선만이 아니라 고개도 히로마사 쪽으로 돌린다.
세이메이가 고개를 돌린 것을 느끼자,
[왜 그러나]
히로마사는 말했다.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아니, 이상하다고 말한 게 아니네]
[그럼 무슨 일인가]
[자네가 방금 재밌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네, 히로마사----]
[재밌는 말?]
[벚꽃이 벚꽃이듯, 히로마사는 히로마사로 있고 싶다고 그리 말하지 않았나]
[했나]
[했네]]
[하지만 왜 그게 재밌는 말인가, 세이메이]
[인간이란 그리 쉽게, 자네가 방금 한 말처럼 살 수 없다네]
[음]
[누군가를 견본 삼아, 다른 그 누군가처럼 살려고는 해도, 자기 자신으로 살려는 인간은 그리 없다네]
[그런 건가]
[그런 거지]
[나는 저 벚꽃이 필 때도, 그리고 질 때도, 묘하게 마음에 든다네]
[호오]
[제대로 피고, 제대로 지지. 벚꽃은 벚꽃으로 있기에 그리 피고, 그리고 가지를 떠나 지지........]
[음]
[무얼 봐도 벚꽃이네. 벚꽃으로밖에 필 수가 없네. 벚꽃처럼 질 수밖에 없네. 벚꽃은 이 얼마나 벚꽃다운가]
[---------]
[그리 생각하니, 나 자신 또한 저 벚꽃처럼 내가 나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네----]
[--------]
[생각해보게, 세이메이]
[뭔가]
[벚꽃만이 아니지. 벚꽃이 그리 피듯이 매화는 매화대로 스스로 피어나지 않는가]
[음]
[나비는 나비처럼. 소는 소처럼. 앵무새는 앵무새처럼. 물은 물처럼----]
[히로마사는 히로마사처럼-------]
[내 말은 하지 말게, 세이메이]
[왜인가]
[왠지 앉아있기가 거북해지네]
[좋지 아니한가. 자네가 먼저 말했으니]
[먼저?]
[음]
[아니, 그야 분명히 내가 먼저 말했을 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하지만, 뭔가]
[그만 두겠네]
[그만둬?]
[자네와 얘기하면 언제 주술 얘기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러면 오늘밤 이 내 안에 가득찬 좋은 느낌이 사라져버릴 것 같네]
[흐음]



뱀발: 그건 그렇고 이 시리즈의 진 히어로는 세이메이, 진 히로인은 히로마사.............뭐 2차 BL할 것도 없어서 그저 바쿠 샘에게 하악하악.

뱀발 둘: 중간의 그림은 우치다 님께 직접 받은 세이히로. 오카노 레이코의 수염 하나 없는 두 사람보다 이쪽이 취향.

뱀발 셋: 그러고보니 음양사 소설 처음 본 지 어느덧 9, 10년이구나...............휴우.

덧글

  • DOSKHARAAS 2010/04/12 00:16 #

    원작자가 원래 데빌맨을 좋아해서 그래요.
  • 사노 2010/04/12 22:37 #

    알고 있습니다.
  • DOSKHARAAS 2010/04/12 00:16 #

    얼마전에도 유메마쿠라 바쿠 소설 하나 다 뗐는데. 이 작가는 엄청 미형 아니면 엄청 근육질, 이런 캐릭터를 좋아한답니다.
  • 사노 2010/04/12 22:37 #

    그보다는 나는 만화 못 그려서 소설가 됐다....가 더 기억에 남는군요.
  • 키르난 2010/04/13 11:17 #

    엉엉엉....;ㅁ; 교토 여행기 보러 들어왔다가 세이메이 + 히로마사에 격침당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집에 음양사 소설 원서 한 권 사놓고는 방치중이었는데 꼭 다 읽고 이 책도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언어의 장벽 따위는 애정으로 뛰어넘고....;;;;

    한국에는 만화가 소설보다 먼저 번역되었다고 기억하는데, 처음에는 만화에 홀릭했다가 소설 읽고 나서는 그대로 손 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사건을 떠 안은 세이메이가 히로마사를 슬슬 꼬시면서 하는 문답입니다. 만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밀고 당기는 대화가 가슴에 꽂혔지요.;
  • 사노 2010/04/13 19:27 #

    꺄우우우우울 바로 그겁니다!!! 세이히로!!!! 이 얼마만에 보는 세이히로 팬입니까 덥썩덥썩(끌어안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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